[전북의소리]“변호사 윤리 크게 벗어난 재심 ,꼭 진실 밝힐 것”
끝나지 않은 삼례 나라슈퍼사건 진실(2)
완주군 삼례읍 나라슈퍼사건 3인조 강도치사 사건(삼례나라슈퍼 사건)은 법치주의 사회에 많은 의미를 던져준 사건이다. 재판주의와 공판중심의 법치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사건, 있어서는 안 되는 희대의 사건으로 기록될 만하다.
무엇보다 경찰의 초동수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다. 초동수사가 폭력에 의한 거짓 자백으로 꾸며져 검찰에 송치돼 결국 3명의 억울한 청년들이 3년에서 6년까지 각자 어두운 옥살이를 하게 된 사건이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위증 등 윤리에 반하는 부도덕한 재심", 삼례 나라슈퍼사건 또 다른 진실공방

박영희 젬마 씨를 지난 20일 만나 인터뷰했다.
경찰과 검찰의 수사 과정이 무죄를 유죄로 만들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해 주었다. 더구나 가난하고 못 배우고 신체적으로 자유롭지 못한 장애를 가진 약자들이 국가와 사법권의 폭력에 의해 희생됐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가 반성해야 할 점이 많다.
그런데 이 시간이 비록 유죄에서 무죄로 밝혀졌지만, 결정적으로 무죄를 증명하고 판결하는 재심공판 과정에서 허위 진술을 유도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따라서 위증 등 윤리에 반하는 부도덕한 재심이라는 지적에 진실을 밝힐 차례다.
이 같은 문제점을 세상에 알리고 바로 잡기 위해 대검찰청 과거사진상조사단에 규명을 요청한 박영희 씨(71)를 지난 20일 만나보았다.
삼례 나라슈퍼사건의 억울한 죄명을 쓰고 옥살이를 한 세 청년의 무죄를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던 박 씨 그리고 박 씨의 남편과 3시간 넘게 인터뷰를 진행했다. 다음은 재심 과정에서 어떤 문제점이 있었는지 인터뷰한 내용을 일문일답식으로 정리했다. /편집자주
삼례 나라슈퍼 강도치사 사건은 재심에 성공한 이후 언론에 더 많이 보도돼 세상에 잘 알려진 사건이다. 그런데 사건이 발생하자마자 초기부터 무죄를 주장하고 억울함을 호소했는데 이 사건을 언제 알게 되었고, 무죄라는 확신은 언제, 어떻게 인지하게 되었는지?
"1991년부터 전주교도소 천주교 교화위원으로서 여러 교우들과 함께 전주교도소를 방문하여 무연고 수인이나 장기수들에게 음식을 제공하고 상담을 하는 봉사활동을 하면서 알게 됐다.
교화활동 기간 중이던 1999년 수감자 중 강 모씨라는 사람을 통해 알게 됐다, 그는 전주교도소에서 복역 중인 모범수로 내가 권유하여 천주교에 입교하여 성실하게 생활하고 출소한 후 현재까지 누구보다도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이다.
당시 그는 교도소 내에서 함께 복역했던 임명선을 자식처럼 돌보아 주었던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임명선을 꼭 상담해주세요. 부탁합니다”라고 적힌 쪽지를 받았다.
그 후 상담시간에 임명선을 처음 만나게 되었다. 아무런 사정을 모르는 상황에서 임명선에게 “이제는 돌아가신 할머니를 위해서 기도를 드려주세요”라고 하자 임명선은 “난 사람을 죽이지 않았어요. 얼굴도 모르는데 어떻게 돌아가신 할머니를 위해 기도를 할 수 있습니까?”라고 말하여 이상히 여기고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당시 임명선은 최대열, 강인구와 함께 1999년 2월 발생한 삼례 나라슈퍼 3인조 강도치사 사건 주범으로 재판을 받고 전주교도소에서 복역 중이었다."
삼례 나라슈퍼사건 현장에서 이상한 점들을 발견했다고 했는데 당시에 어떤 문제점을 발견했나?

사실을 알리기까지 많은 고민을 했다고 말하는 박 씨.
"임명선으로부터 사건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후 사건 현장을 여러 번 다녀왔다. 그런데 사건 현장에 처음 갔을 때 대문이 유독 눈에 띄었다. 신문에서 본 기사와 달리 대문이 녹이 많이 쓸어 있었고 오래되어 힘껏 당기지 않으면 잘 닫히지도 않을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의심했다. 나중에는 그곳에서 자취하는 사람들이 밤에도 수시로 드나들었기 때문에 수년간 대문을 닫지 않은 채 살았다는 말을 들었다. 그런데 최초 수사기록에는 범인들이 대문이 닫혀 있어 담을 넘어 슈퍼에 들어갔다고 기재되어 있었다.
또한 현관문에 나 있는 자국이 임명선이 수사기관에서 진술하였다고 하는 드라이버 자국이 아니라 그 보다 훨씬 넓은 부위가 눌려져 있어 이상하다고 생각되었다. 임명선의 말이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고 더욱 확신하게 된 것이다."
“가족과 친지들에게 억울함 호소했지만 처음엔 믿지 않아”
재심을 위해 노력한 일들 중 가장 큰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는가?
"억울한 누명을 쓴 3명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서 가족들에게 알리고 도움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에 신문에 난 기사를 토대로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어렵게 가족을 찾아 나섰는데 행방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마침내 임명선의 부모와 여동생 둘, 고모, 강인구의 아버지, 최대열의 아버지와 누나 등을 찾아가 직접 만나고, 서울에 사는 강인구의 고모와 통화도 했지만 찾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어렵게 만나 본 이들 가족들은 모두 생활형편이 너무 좋지 않아 재심을 청구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더구나 친인척들은 물론이고 주변사람들 조차 옥살이를 하고 있는 3명이 무죄라는 것을 반신반의하는 상태였다.
그래서 당시 가족들에게 지금 범인으로 지목된 이들은 살인자가 아니라 억울하게 누명을 쓴 것 같다고 말해주었으나 쉽게 납득하지 않아 안타까웠다."
부산지검까지 찾아가 진범의 목소리를 피해자와 함께 가서 들었다고 언론에 밝혔는데 당시 담당 검사가 순순히 협조하며 도움을 주었는가?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다 피해자가 함께 왔으니 진범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고 하자 부산지검 당시 최모 담당 검사가 마음이 변했다. 영상실에 함께 가서 부산 3인조를 촬영한 동영상을 보여주었다. 함께 간 피해자 최모 씨는 동영상의 부산 3인조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울었고, 진범의 목소리가 틀림없다고 했다.
그러자 담당 검사는 ‘이렇게 아줌마들이 쫓아다녀서 해결될 일이 아니니 전문가인 민변 같은 단체를 찾아가 도움을 받으라’고 조언해 주었다.
부산지검에서 담당 검사를 만나고 온 2000년경 최대열에 대한 판결이 확정된 직후 당시 전주에 있는 민변 소속 변호사가 있는 모 법률사무소의 도움을 받아 재심을 청구하게 됐다."
왜 최대열만 재심 청구를 했는가?

남편(오른쪽)과 함께 당시 상황을 회고하고 있는 박 씨.
"부산지검에 다녀온 후 확신을 갖고 3명 모두를 대상으로 재심을 청구하려고 하였으나 임명선, 강인구로부터는 재심에 필요한 서류를 받지 못하여 부득이하게 최대열에 대한 재심만을 청구할 수밖에 없었다.
임명선의 경우 처음 이 사건에 관한 이야기를 들고 그 이후로 약 30~40통의 편지를 주고받는 등 계속하여 연락을 했는데 막상 재심을 청구할 무렵에 임명선과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면회가 되지 않았다. 연락이 닿지 않아서 재심에 필요한 서류를 받을 수 없었고 강인구로부터도 재심에 필요한 서류를 받을 수 없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임명선은 다른 교화위원들이 재심이 받아들여질 가능성도 거의 없는데 괜한 분란을 일으키지 말라며 만류하였기 때문에 재심을 포기하였다고 말했다.
또한 1999년경 전주교도소에서 임명선을 상담해 달라는 쪽지를 몰래 전달해 준 강모 씨를 만나 물어보니, 2000년경 당시 임명선이 교도소 내에서 재심을 신청하기 위하여 필요한 서류를 준비하려고 하자 교도관들이 괜한 짓을 한다며 불같이 화를 내어 임명선이 겁을 먹고 더 이상 재심 청구를 위한 준비를 하지 못하였다고 말했다는 것을 알았다."
재심 과정에서 박준영 변호사 그리고 박상규 기자 등과 같은 집에서 먹고 자며 준비를 했다고 들었다. 이들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가?
"박준영 변호사가 2015년 집으로 직접 찾아와 처음 만나게 되었다. 박 변호사는 '삼례 나라슈퍼사건 재심을 하고 싶다'고 하면서 '내가 가지고 있는 기록을 찾아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그 당시 교수로 재직 중이던 남편의 연구 문제와 가정사 등으로 미국으로, 또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다니면서 서류들을 어디에 두었는지 아무리 찾아봐도 찾을 수 없었다. 그 후에도 박 변호사는 여러 차례 전화하여 기록을 찾아줄 것을 요청했다.
그런데 해당 기록을 끝내 찾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 후 박 변호사는 내가 최대열에 대한 재심 신청 기각 결정에 대한 재항고를 신청할 때에 도움을 주었던 서울 민변 소속의 김모 변호사로부터 이 사건에 관한 기록을 받았고, 이를 토대로 2015년 3월 재심을 신청하게 되었다.
그런 뒤 사건의 재심 과정에서 박 변호사와 다른 변호사 그리고 언론인 등이 함께 우리 집에서 숙식하며 재심을 준비했고 나는 그들에게 숙식을 무료로 제공하며 도왔다."
“펀딩한다며 내 사진을 포털에 올려 당황...내려달라고 요청했다”
박준영 변호사와 재심 과정에서 불편한 일들이 발생했다고 들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가?

포털 사이트의 펀딩 자료 사진으로 초기에 올려집 박 씨 모습.
"2015년 재심을 앞두고 박준영 변호사, 박상규 기자와 카메라 기자 등이 우리 집으로 찾아와 '삼례 사건을 혼자서 조사하게 된 경위와 재심 신청 과정을 취재하여 재심 재판에 활용하겠다'며 내가 다니는 성당에서 미사 모습을 촬영하면서 교화위원 신분으로 삼례 3인조를 만나게 된 경위, 부산검찰청 최모 검사실 방문 과정 등을 취재했다. 삼례 사건 당사자들과 주고받은 옥중 편지 20여 통을 꺼내어 이들과 관련된 과거를 회상하며 담소를 나누기도 했다.
그런데 내 딸이 어느 날 '엄마 얼굴 사진이 인터넷에 떠 있고 독자들로부터 돈을 모으고 있는 데 어찌된 일이야?'라고 묻기에 깜짝 놀랐다.
누가 내 허락도 없이 내 사진을 인터넷에 게재하고 삼례 나라슈퍼사건을 기사화하여 돈을 모금하다니 깜짝 놀라 보니 박준영 변호사팀이었다. 곧바로 박 변호사에게 전화를 하여 이의제기를 하고 사진을 내려달라고 하였다. 2016년 3월경 박 변호사와 통화한 내용이 증거로 남아 있다.
당시에 '무기수 김신혜 사건'에 관한 인터넷 포털 다음의 스토리 펀딩 기사에 삼례 사건 재심을 접수하는 사진이 올라와 있었는데, 나로서는 김신혜가 누구인지 전혀 알지 못하였고 취재 과정에서 펀딩에 관한 설명을 들은 바도 전혀 없었기 때문에 얼굴을 붉힌 적이 있다. 그 후로 펀딩에 관해서 별로 좋지 않은 감정을 갖게 됐다."
펀딩은 그 후 어떻게 진행됐으며 돈은 함께 나누었는지?
"펀딩으로 박준형 변호사와 박상규 기자가 모은 돈은 구체적으로 알 수 없으며 나와는 전혀 나누지 않았다."
“오랫동안 무료로 숙식 제공했지만 한 푼도 받지 않았다”
박준영 변호사의 ‘하나도 거룩하지 않은 파산변호사’ 펀딩은 어떤 내용인지 알고 있는가?
"박준영 변호사팀은 ‘파산 변호사, 또는 재심 전문변호사’라는 명분을 내세우면서 2016년 8월경부터 펀딩을 시작한 것으로 안다. '삼례 3인조의 생활비를 대느라 파산하였다'는 등의 내용을 실었고, 내게는 아무런 동의도 구하지 않고 재심개시 결정일에 웃고 있는 내 모습을 찍은 사진을 파산 변호사 펀딩에 무단으로 게재한 것을 보고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박준영 변호사에게 전화를 하자 오히려 ‘내면을 들여다 보라, 실망이다’는 등의 말을 반복하여 참으로 어처구니없고 황당했다. 통화된 내역을 보니 그 때가 2016년 8월 11일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전국은 하나도 거룩하지 않은 변호사에게 열광하고 있기에 어이가 없었다.
페이스북 등에는 펀딩을 독려하며 보다 조직적으로 박 변호사에게 가세하는 것을 보았고 2016년 9월 7일 공판 기일에 출석하기 직전 아침에서야 박 변호사가 페이스북에 오늘 날짜로 재판이 종결된다고 글을 올린 것을 보게 되었다."
포털 사이트에 펀딩을 시작할 무렵 박영희 씨 사진도 노출되고 또 돈이 많이 모인 것으로 안다. 펀드와 보상금 등으로 모인 돈은 재심을 위해 노력한 사람에게도 조금씩 나누어 주었다고 박 변호사가 언론에 밝혔다. 받은 적이 정말로 없는가?
"나는 받은 적이 없다. 천주교 미사 드리는 내 사진을 펀딩하는 용도로 올렸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내 생각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고 사진을 내려달고 요청했고, 펀드로 모인 돈이나 재심 과정에서 성공 사례비 등이 주변 사람들에게도 나누어 지급됐다고 알려진 것과는 달리 그들에게 많은 재심 기간 동안 숙식과 음료 등을 제공했던 나는 한 푼도 받지 않았다."
변호사인 딸도 함께 재심을 도왔는데 딸에게 문제는 없었는가?

삼례 나라슈퍼사건 재심을 위해 노력한 박 씨 부부.
"그들은 ‘가짜 살인범 3인조의 슬픔‘이라는 연재물이 펀딩에서 성공하고 그 무렵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내 딸(백선경 변호사)도 함께 이 사건 재심에 동참하여 재판과정에 참여하기로 했지만 몇 달 동안 박준영 변호사가 딸에게 사건기록을 전달하여 주는 것을 차일피일 미루어 애태우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이상하게 여겼다.
재심 과정에서 딸이 문제점을 발견하고 법정에서 많이 울었다. 그래서 더욱 속이 상했다."
그런데 박준영 변호사팀에게 왜 무료로 숙식을 제공했는가?
"당시 각종 언론 기사는 박준영 변호사에게 집중이 되었는데 재심의 성공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도왔다.
박 변호사는 삼례 사건 때문에 일반 사건 수임을 할 수 없어 금전적 어려움이 있다는 푸념을 늘어놓았으나 나는 그런 푸념을 귀담아 듣지는 않았고, 박 변호사 등이 재심공판에 참석하거나 KBS 스페셜 촬영을 위하여 전주에 올 때 진범에 대한 취재 장소 등으로 기꺼이 우리 집을 이용하게 하고 숙식을 제공하는 등 마음을 다해 도왔다."
재심 과정에서 박준영 변호사와 박상규 기자 외에 어떤 사람들이 함께 집에서 생활하게 되었는가?, 그로 인해 불편한 점이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2016년 5월경 한마디 예고도 없이 갑자기 박준영 변호사, KBS 피디, 카메라맨이 집으로 찾아와 '과거 삼례 사건의 부산 진범 수사 검사인 최모 검사를 찾아가야 한다'고 강권하면서 '먼저 전화부터 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이미 최 검사를 취재하기 위하여 방송국에서 연락을 하였으나 연락을 받지 않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비서실에서 약속 잡기를 거절하였다.
삼례 사건의 진범을 수사하였던 부산 검사는 당시 춘천지방 검사장이었므로 '직접 만나서 항의하는 광경을 촬영하여 방영하면 대박'이라면서 '춘천검찰청에 가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러나 당시 '최 검사는 진범 영상을 보여주고 도움을 주었던 분인데 강제로 출근길을 막아서서 인터뷰하는 장면을 촬영하고 싶지 않다'고 거절했다.
그 후에도 박준영 변호사는 삼례 사건을 주제로 한 출판과 북콘서트 개최, 영화제작 등을 하였으나 사전에 내게는 어떠한 통보도 없었다. 무죄 판결 후 전주에서 ‘귀신보다 무서운’이라는 연극이 공연되었는데, 지인이 그 소식을 알려 주어 마지막 공연을 남편과 함께 보게 됐다.
그런데 공연 내용을 보니 교화위원 역은 돌아가신 피해자 할머니를 맡은 분이 1인 2역을 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모든 것은 변호사가 사실관계를 밝히는 것으로 그려져 있었다. 끝난 뒤 공연 관계자를 만나려 하였으나 만나지 못했고 복잡한 심경으로 남편의 권유로 내 역할을 했던 배우와의 사진 및 간단한 소회를 밝히고 돌아섰다."
함께 숙식하며 그들을 도왔던 재심 기간은 얼마나 되는지?
"2015년 3월 재심을 신청하여 2016년 7월 재심 개시 결정이 내려졌고 같은 해 10월 28일 재심 판결이 선고됐으니 이 기간 내내 함께 하면서 도왔다."
재심에서 허위 진술과 부도덕한 행위가 있었다고 했는데 어떤 일들이 있었나?

언론에 보도된 내용들 중 많은 부분이 잘못됐다고 주장하는 박 씨.
"재심 공판이 개시된 2015년 11월 26일 이후 박준영 변호사가 처음으로 변호사 단체 톡방을 만들었다. 2016년 6월 1일 공판기일 하루 전날 보도자료에 관한 의견을 달라고 하여 내 딸이 “어머니 이야기도 들어갔으면 좋겠어요“라고 하자, 박 변호사는 딸에게 “함께 작업할 수 없다”는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다. 2016년 5월 31일 박 변호사와 딸의 카카오톡 대화 내용에 보면 알 수 있다.
결국 내 딸이 재심청구인 임명선에 대한 심문을 예정대로 맡기로 했지만 당시 나는 2016년 5월 31일 박 변호사와 KBS PD와 몇 차례 장시간 통화 후 더 이상 말로 할 수 없는 허탈함을 느껴 다음 날 예정되었던 재심 청구인들에 대한 심문 등이 진행되는 공판에 참석하지 않았다."
“최대열 심문 과정 사실과 달라..명백한 허위 진술 유도”
딸이 공동 변호를 맡으면서 재판장에서 일련의 억울함을 왜 호소하지 않았나?
"재판이 시작되기 5분 전, 법원 앞에서 딸이 임명선 등 재심 청구인들에게 “왜 최대열만 재심 청구를 하고 임명선, 강인구는 재심 청구를 안했느냐”고 묻자 “아, 어제 그거.. ‘예배당 아줌마’.. 예배당 아줌마들이 재심청구 못하게 한거..”라고 하더라면서 딸로부터 급히 전화가 왔다.

참고자료로 제출한 최대열 심문조서 중 일부(박준영 변호사 질문과 답변 등)
딸은 내게 “교화위원들에게 누가 될 것 같은데 그와 같은 내용을 증인 심문해도 되겠냐”고 물어서 “괜찮다”고 답하였다. 그런데 그 날 박준영 변호사는 누구보다도 나의 과거 재심 청구 과정을 잘 알고 있음에도 의도적으로 2016년 6월 1일 최대열에 대한 심문 과정에서 “재심서류는 교도소에서 같이 수감했던 어른이 써 준 것인가요?”라고 묻자 최대열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임명선은 불과 5분전 기억하던 재심청구 사실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진술하였다. 명백한 허위 진술을 유도한 것이다. 이 날 이러한 진술을 모두 들었던 내 딸인 백선경 변호사는 가슴이 아파 법정에서 눈물을 터뜨렸다.
변호사로서 처음으로 맡은 사건 재판에서 이 같은 허위 진술이 오간 것을 보고 실망을 금치 못하고 얼마나 울자 재판이 도중에 휴정할 정도였다. 딸은 그 때서야 공개 법정에서 단 한 번도 내 이름이 거론조차 되지 않은 이유를 알게 되었다고 한다."
가장 힘들고 화나게 한 일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2016년 6월 1일 법정에서 있었던 일에 관하여 큰 충격을 받은 상황에서 이 사건 피해자인 최모 씨가 내게 전화로 '박준영 변호사 등 10여명이 모인 자리에서 박 변호사는 스토리 펀딩의 수입금을 N분의 1로 나누어 주었으며, 박영희 선생님에도 주었다'라는 말을 듣고 가장 화가 났다.
그 당시 최모 씨와 통화내용에 남아 있다. 나를 위로하려 애썼지만 나는 삼례 아이들 일을 하면서 단돈 1원도 받은 사실이 없다."
박준영 변호사에게 내용증명을 보냈다고 들었다. 무슨 내용이었는지?
"박 변호사는 박상규 기자와 KBS 윤모 PD, 사진 작가 등과 함께 나를 전주 덕진공원과 성당 등을 찾아다니면서 인터뷰와 취재를 하면서 그간 내가 뼈아픈 이야기 일들을 극화하고 얼굴 사진을 게재하는 방법으로 국민으로부터 불쌍한 이들의 재심을 위한 후원금으로 받아서 재심에 성공했다.
나는 이미 다 밝혀진 사건의 재심을 위하여 일반인들에게 후원금을 받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라서 그런 행위를 그만둘 것을 강력히 요구한 바도 있다.

관련 자료들을 모아 진상규명 자료로 제출했다는 박 씨.
그런데 박 변호사는 모금이 끝나자 펀딩 수익금을 관련된 사람들과 분배하는 과정에서 내게는 1원도 주지 않았으면서 사람들에게는 내게도 N분의 1로 주었다는 허위 사실을 밝힌 바 있다.
또한 재심을 신청한 후 나와 딸에게 '공감을 못하는 사람', '왜 욕심이 그리 많으냐? 당신을 TV에 내주었으면 되지 않았느냐'는 등의 모욕적인 발언까지 했다.
게다가 박 변호사는 재심 사건에 승소하면서 국가 보상금을 마치 나와 딸에게도 준 것으로 오해될 수 있는 언론 보도를 접한데 이어 삼례 나라슈퍼 사건의 재심 성공은 마치 박 변호사가 홀로 한 것으로 연극, 영화나 언론에 보도되는 것을 보고 참을 수 없었다.
이에 1999년부터 재심 판결까지 7년여 동안 소요됐던 영치금, 유가족 탐문 경비, 부산검찰청 방문 경비, TV 프로그램 현장 촬영 보조비, 민변 변호사 재심 신청비와 재심 과정에 박 변호사와 동료들에게 제공된 식대 및 음주비, 의뢰비 등이 지출되었으며, 그간 내가 입은 정신적 및 육체적 피해가 있었기에 내용증명을 지난해 7월 남편 이름으로 박 변호사 앞으로 보냈다."
내용증명에 대한 답변은 왔는지?
"지난해 9월 2일자로 보내왔다."
박준영 변호사 “법적 권리를 말한 것에 대해 조금도 인정할 수 없다”
내용증명에 답변은 어떤 내용들이 있었는가?
"여러 내용들이 있었지만 그 중에는 재심 과정에서 '대열씨(최대열)가 글을 읽고 쓰는 것을 어려워한다는 점을 부각하려고(자백이 담긴 조서의 문제점 입증하는 의미) 법원에 제출된 탄원서 등을 동료 수감자들이 대신 썼다고 했다”고 밝혔다. 또 “전주지검 내사 당시 작성된 조서에 나온 문답을 토대로 실제 자백이 구체적으로 이뤄진 것인 양 주장했기 때문에 진술 거부권을 행사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저는 내용증명에 언급한 것처럼 염치없는 사람이 아니다'며 '따님이 변호인으로 참여한 사건이라며 제발 재판자료를 보고 따님이 전한 재판 상황이 맞는지 확인해 달라'고 했다. 그리고 '법적 권리를 말한 것에 대해 조금도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혀왔다."
억울한 사연을 왜 언론에 알리지 않았는가?
"변호사인 사위가 과거 내가 한 일들을 제대로 기록하여 둘 필요가 있겠다고 하며 2017년 10월 자신의 페이스북에 삼례 사건을 조사하고 재심 청구한 과정에 관한 글을 게재했는데, 이 글이 일부 인터넷신문에 기사화 된 사실이 있었을 뿐, 그 어느 언론사도 인터뷰를 자청한 사실이 없다.
제대로 수사와 재판을 받지 못한 억울한 아이들을 위해 밤낮 없이 뛰어다닌 내가 과거에 재심 청구 사실로 교도소 측의 무언의 압박을 받아 10여년 간 임하던 천주교 교화위원 봉사직을 그만둔 것으로 모든 것을 내려놓으려 했다.
그런데 '파산 변호사, 또는 재심 전문 변호사'라는 명분을 내세우면서 펀딩을 하고 결론적으로 변호사가 자기 이익을 위하여 재심 청구인들로 하여금 법정에서 허위 진술을 하도록 하여 과거의 억울한 재판과 마찬가지로 재심 재판에서 사건의 진실이 왜곡된 재판 기록물을 남기게 되었다는 점에서 진실을 알릴 필요가 있다고 여겨 다시 나선 것이다."
“분명한 사실은 변호사 윤리를 크게 벗어 난 것, 반드시 진실 규명할 것”
이미 많은 언론에서는 삼례 나라슈퍼사건은 재심에 성공했고 모든 과정이 잘 끝난 것으로 알려졌는데 부담스럽지 않은가?
"그들의 후속담은 훈훈한 미담으로 남아 있고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을지 모르겠으나 엄연한 사실 왜곡의 증언이 있었고 과거사를 밝힘에 있어 어떠한 목적이나 이익을 떠나 진실을 기반으로 하여야 함은 너무나도 기본적인 소양이다.
분명한 사실은 변호사의 윤리를 크게 벗어 난 것이며 이 시대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임을 밝혀 두고자 하는 것이다."
대검찰청 과거사진상조사단에 ‘재심과정에서 진술인의 인격권 침해사실을 고함’이란 민원을 제기했는데 언제 무슨 사유로 냈는지?

대검찰청 과거사진상조사단에 요청한 내용 일부
"삼례 세 청년의 무죄 확정은 오랜 세월 진술인 본인의 큰 소망이었으나 재심 재판 과정의 면면은 기만과 부도덕한 행위로 인해 이해하기 힘들었고, 이 사건의 진실을 밝힌 과정은 호도 되고 본인은 졸렬한 모습으로 남의 노력을 내 것으로 내세우는 사람으로 취급되어 2018년 6월 과거사진상조사단에 조사를 요청했다. 진실은 반드시 규명되고 밝혀져야만 하기 때문이다."
대검찰청 과거사진상조사단에 어떤 참고자료들을 제출했는가?
"참고자료를 준비하느라 많은 시간이 걸렸다. 다음과 같은 목록 순으로 첨부해 제출했다.
참고자료 1. 2016. 3.경 박준영 변호사와 박영희간의 통화녹음 및 녹취록, 참고자료 2. 김신혜 Story Funding 쓰인 나의 초상과 삼례관련 기사, 참고자료 3. 교화위원으로 활동할 당시에 재소자들과 주고받은 편지 사진, 참고자료 4. 박준영 변호사와 백선경 변호사 간의 문자 사진, 참고자료 5. 2000년경 과거 재심 당시 진술인이 수사기록에 기재한 자필 메모, 피해자 유족의 탄원서를 대신 작성하여 재심 기각결정(2000. 9. 29.) 후 항고시 제출한 서류, 참고 자료 6. 2016. 5. 31. 박준영 변호사와 백선경 변호사간의 카카오톡 대화 사진, 참고자료 7. 2016. 5. 31. 박준영과 백선경의 통화녹음 및 녹취록,
참고자료 8. 2016. 10. 1. 박영희와 임명선의 대화녹음 및 녹취록,참고자료 9. 과거 진술인이 재심청구인 최대열 명의로 작성한 서류 사진, 참고자료 10. 임명선, 최대열, 강인구 등의 심문조서, 페이스북 게시글 등, 참고자료 11. 2016. 6. 1. 박영희와 최성자간의 통화 녹음 및 녹취록, 참고자료 12. 2016. 7. 6. 박영희와 박준영 통화녹음 및 녹취록, 참고자료 13. 한겨례 신문 재심개시결정일 동영상 캡쳐 사진, 참고자료 14. 2016. 8. 11. 박영희와 박준영 변호사간의 통화녹음 및 녹취록, 참고자료 15. 2016. 8. 24. 스토리 펀딩 3화 내용 중 일부 사진 및 기사 내용, 참고자료 16. 9. 7. 공판기일 전주지방법원 앞 대화녹음 및 녹취록, 참고자료 17. 10. 3. 박준영 변호사의 카카오톡 메시지 사진 및 메시지 내용,
참고자료 18. 10. 7. 기자들에게 배포한 문서, 참고자료 19. 정철승 변호사 관련 내용, 참고자료 20. 허핑턴 포스트 ‘삼례3인조 강도치사 재심’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 참고자료 21. 천주교 대구관구 뜨리니따스 회보, 참고자료 22. 99년경 박영희의 일기, 참고자료 23. 임명선과 함께 수감되었던 강철구의 사실확인서, 참고자료 24. 카드뉴스 파산변호사가 보여준 희망 그리고 이 시대의 민낯, 참고자료 25. 2016. 10. 28. 손우기의 페이스 북 글 등이다"
/<전북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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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윤리 크게 벗어난 재심 ,꼭 진실 밝힐 것” - 전북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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