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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의소리]북한 찬양 묵인했다는 이유로 억울한 옥살이 52년 만에 '무죄’...힘 실리는 국가보안법 폐지론

jbsori 2021. 12. 15. 16:33

진단

15일 전주지법 군산지원 앞에서 52년 만에 반공법 무죄 판결을 받은 피고인들(고 임도수 씨와 양재천 씨)의 유족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국가보안법의 전신인 반공법에 의해 억울한 옥살이를 한 사람들에게 50여년 만에 무죄가 연이어 선고되면서 국가보안법 폐지론에 무게가 더욱 실리는 형국이다. 군산에서는 동료 선원이 북한을 찬양하는 것을 듣고도 이를 수사기관에 알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처벌을 받았던 선원들이 52년 만에야 누명을 벗어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전주지법 군산지원 형사1단독(부장판사 노유경)은 15일 반공법 위반(불고지죄) 혐의로 기소된 임도수 씨와 양재천 씨에 대한 재심사건 선고 공판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고인이 된 상태여서 아쉬움이 크다. 

문제는 전주지법 군산지원이 2년 전에도 비슷한 판결을 내려 세간의 주목을 끌었다. 그 때도 국가의 폭력과 지체된 사법부 판결이 도마 위에 올랐었다.  2019년 7월 19일 전주지법 군산지원 제1형사부(당시 부장판사 해덕진)는 반공법 및 수산업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각 징역 1~3년의 징역살이를 한 남정길(69) 씨 등 납북어부 6명에 대한 재심사건 선고 공판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적법한 구속영장이 발부되기 전부터 경찰서 등에 강제로 체포·구금돼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수사관들의 고문과 가혹 행위가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며 "수집된 증거는 모두 증거능력이 없다고 볼 수 있어 피고인들에 대한 이 사건 공소사실은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며 무죄 이유를 밝혔다.

 

52년 만에 반공법 위반 무죄…그러나 너무 늦은 판결

전주지법 군산지원

2년이 지난 이날도 1969년 동료 선원이 북한을 찬양하는 것을 듣고도 그 사실을 수사기관에 알리지 않은 혐의로 기소돼 처벌받았던 고 임도수 씨와 양재천 씨의 재심사건을 맡은 재판부는 또 무죄를 선고했다. 

그동안 국가는 '반국가 활동을 한 사람을 알고 있으면서도 수사기관이나 정보기관에 신고하지 않는 경우 성립되는 불고지죄'로 두 사람에게 족쇄를 채워왔으나 강압에 의한 것이었음을 뒤늦게 인정한 것이다. 

노유경 부장판사는 이날 “수사단계에서 불법 구금과 고문 등 가혹행위가 있었던 만큼, 당시 피고인들의 자백과 진술은 증거능력이 있다고 볼 수 없다”며 무죄 이유를 밝혔다. 이날 선고로 두 사람은 불법 체포돼 구금된 지 52년 만에 누명을 벗게 됐지만 두 사람 모두 이미 고인이 된 상태여서 억울함이 더하게 됐다. 

 

재판부 "국가가 국민에게 해서는 안 되는 일 범했다...많이 늦었지만 고인의 명복을 빈다” 

임씨 등은 1966년과 1968년, 동료 선원의 북한 찬양 사실을 인지하고도 이를 즉시 수사기관에 고지하지 않은 혐의로 기소돼 1969년에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3년, 자격정지 1년 형을 선고받았다. 이 판결은 그대로 대법원에서 확정됐으나, 피고인들의 가족이 재심을 신청함에 따라 전주지법 군산지원이 지난 9월 재심을 결정했다.

이날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체포될 당시 형사소송법 규정에 따라 적법하게 구속영장 집행이 이뤄졌다거나 긴급 구속의 요건을 충족했다고 볼 어떠한 자료도 찾을 수 없었다”며 “이 사건의 공동 피고인들의 진술 등을 종합하면 수사 과정에서 피고인들에 대한 고문과 가혹행위가 이뤄진 정황도 엿보인다”고 설명했다.

또한 “반공법(현 국가보안법)은 자유민주주의 기본 질서에 해악을 끼칠 위험이 있을 때 처벌한다”며 “하지만 이러한 위험을 발생시켰다고 볼만한 행위가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인정됐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피고인들에 대한 공소사실은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무죄를 선고한다”고 판시했다. 

이날 재판부는 특히 “판결문에 적시했듯이 국가가 국민에게 해서는 안 되는 일을 범했다”며 “재심의 결과로 고인이 된 피고인들의 명예가 조금이나마 회복됐길 바란다. 많이 늦었지만,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위로했다.

그러나 이들은 옥살이를 하는 과정에서 담당 수사관들로부터 불법 감금, 가혹행위를 당했다. 더구나 억울한 누명을 썼던 임도수 씨는 지난해 9월 8일에, 양재천 씨는 1973년 12월 22일에 세상을 떠났다. 고 임도수 씨의 딸인 임영신 씨는 이날 판결 결과에 대해 “무죄라고 판사가 판결하는 순간 아버지 생각이 나서 눈물이 났다”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가장 많이 좋아하실 것”이라고 눈물을 글썽였다.

고 양재천 씨의 아들 양은석 씨도 “아버지의 누명을 벗겨 주고 싶어 재심 신청을 하게 됐다”며 “이제야 무죄 선고로 아버지의 명예가 조금이나마 회복돼 너무 기쁘다”고 말끝을 흐렸다. 이번 재심 사건은 고인이 된 아버지들의 명예를 회복하겠다고 나선 유족들이 재심을 신청하면서 진행됐다.

 

반공법 위반 혐의 납북 어부 6명 50년 만에 무죄...지체된 사법 판결

고대 그리스 신화의 '정의의 여신, 디케(Dike)'(자료사진)

늦은 사법부의 무죄 판단은 2년 전에도 똑같이 발생했다. 2019년 7월 전주지법 군산지원 제1형사부는 반공법 및 수산업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각 징역 1~3년의 징역살이를 한 남정길(69) 씨 등 납북어부 6명에 대한 재심사건 선고 공판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적법한 구속영장이 발부되기 전부터 경찰서 등에 강제로 체포·구금돼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수사관들의 고문과 가혹 행위가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수집된 증거는 모두 증거능력이 없다고 볼 수 있어 피고인들에 대한 이 사건 공소사실은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며 무죄 이유를 밝혔다.

당시 막내 어부였던 남 씨는 1968년 5월 24일 어선 '제5공진호'를 타고 동료 선원들과 연평도 인근 해역에서 고기를 잡던 중 강제 납북돼 북한에 5개월 가량 억류됐다가 돌아온 후 반공법 위반 등의 혐의로 체포됐다. 이들은 북한의 지령을 받아 국가기밀을 탐지하고 수집하는 간첩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1969년 재판에 넘겨졌고, 각각 1~3년간 옥살이를 했다.

하지만 그 당시에도 뒤 늦은 무죄 판결로 함께 기쁨을 나눌 동료들은 모두 세상을 떠나고 없는 상태였다. 당시 기관장이던 박남주 씨는 징역살이 후 모진 고문 후유증으로 2년도 못 살고 세상을 떠났으며, 남 씨 역시 고문 후유증 때문에 뇌출혈 등으로 거동이 불편한 상태였다.

 

반공법 위반 혐의로 억울한 옥살이한 사람들 아직도 명예 회복 못한 경우 많아

재심을 통해 간첩 혐의를 벗은 남 씨는 당시 언론과 인터뷰에서 "열여덟 살 이후로 갖은 고생을 하며 50년의 세월 동안 누구 앞에 떳떳하게 설 수 없었는데 이제 떳떳하게 살 수 있게 됐다“면서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울먹였다.

이들을 변호한 서창효 변호사도 당시 "국가 폭력 피해자들이 힘겹게 셀프 구제를 하는 현실과 한계에서 아직도 피해 구제를 받지 못하고 있는 납북귀환 어부 조작사건 피해자들이 다수"라며 "국회에 계류 중인 과거사법 개정이 조속히 이뤄져 관련 조작사건에 대한 국가 차원(과거사위원회)의 조사활동과 진실규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2019년까지 과거 납북 어부 3,600여명 가운데 반공법 위반 혐의 등으로 처벌받은 사람은 1,300여명으로 이 가운데 40여건만 재심을 통해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처럼 반공법 위반 혐의로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나와 죽은 사람들이 많지만 아직도 명예가 회복되지 못하고 있는 사례들이 많다.

반공법은 1961년 5·16 군사정변으로 권력을 장악한 박정희 중심의 군부세력의 첫 번째 ‘혁명공약’에서 비롯됐다. ‘반공을 국시로 삼고 형식에 그쳤던 반공체제를 재정비 강화한다’는 취지로 좌익사범 혐의로 2,000여 명을 체포하는가 하면 군사정변 후 불과 두 달도 안 된 1961년 7월 3일 반공법을 제정 공포했다.

반공법 제정 이전에도 이미 국가보안법이 존재했고 1958년에는 이른바 ‘보안법 파동’을 겪으면서 한층 강화된 조항들이 삽입된 상황이었다. 따라서 또 다른 법률의 필요성이 그리 크지 않았다. 즉, 반공법 제정과 공포는 군사정변 세력의 이른바 ‘혁명공약’ 제1호를 강조하기 위한 정치적 의도가 크게 작용한 것이었다.

 

반공법 후신 국가보안법 폐지 주장 지금도 계속 이어져

자료사진

법률 제643호로 공포된 반공법은 많은 부분이 국가보안법과 겹치는 것이었고 국가보안법이 일반적인 반국가 행위에 대한 처벌법이라면, 반공법은 그중에서도 공산주의 활동에 관한 처벌법이었다. 이에 따라 반공법에 대한 각계의 비판이 그치지 않았고 결국 1980년 국가보위입법회의에 의해 국가보안법으로 흡수 통합되면서 폐지되고 그 내용의 일부가 국가보안법에 흡수되었다.

이에 따라 종래의 반공법은 폐지되고 반공법과 비슷한 규정이 이 법에 포함되었다. 이 법은 원래 북한의 공산집단의 구성원, 또는 그 지지자에게 적용되지만, 이들의 활동을 고무·찬양 또는 동조하는 사람 등에게도 적용됐다. 

그러나 이 법의 근간은 반공법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국가보안법 폐지 여론은 줄곧 제기돼 왔다. 시민단체들을 중심으로 폐지운동이 그동안 이어져 온 가운데 최근에는 지난 11월 2일부터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서 시작된 국가보안법 폐지 1인 시위가 세계인권선언 기념일인 이달 10일까지 어어져 세계 언론의 주목을 끌었다.

 

국가보안법 폐지 국회 앞 1인 시위, 6주 동안 진행

국가보안법폐지국민행동은 지난 11월 2일부터 6주간에 걸친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 국가보안법 폐지 1인 시위를 10일 오후까지 펼쳤다. 각계 각층이 참여한 국가보안법 폐지 1인 시위는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사건 국정원 피해자 유우성 씨, 사진 작품으로 국가보안법을 위반으로 기소됐다고 무죄로 풀려난 사진작가 이시우 씨, 최근 34년 만에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교사 강성호 씨, 재일동포 간첩조작사건으로 구속돼 30년 만에 무죄를 선고 받은 장의균 씨 등 국가보안법 피해자들이 나섰다.

또한 시민사회단체와 종교계, 학계, 법조계, 문화예술계 등 관계자들이 국가보안법 폐지 1인시위에 참여했다. 국가보안법폐지국민행동은 1인 시위를 마친 지난 10일 "인권과 공존할 수 없는 악법 중 악법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는 가운데 세계인권선언일을 맞을 수밖에 없는 오늘이 무척 분노스럽다"며 "지난 5월 10만 국회 국민동의청원에도 불구하고, 임기 마지막까지 심의 연장을 결정한 국회는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민형배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광주 광산구을)은 지난 10월 15일 여당의원 21명의 동의로 국가보안법 폐지안을 공식 발의했다. 지난 2004년 이후 17년 만에 이뤄진 여당의원의 발의였다.

 

“민주 인권, 평화통일 가로막는 국가보안법 당장 폐지하라”

'국가보안법폐지 대전시민행동'은 지난 1일 오후 대전시청 북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민주 인권, 평화통일을 가로막는 최대악법 국가보안법을 당장 폐지하라"고 촉구했다.

앞서 지난 1일에도 국가보안법 제정 73년을 맞아 대전지역에서 시민단체들이 국가보안법 폐지를 촉구하고 나서 시선을 끌었다. 특히 이들은 더불어민주당이 국가보안법 폐지 청원 심사 기간을 2024년 5월 29일까지 연장하기로 국민의힘과 합의한 것과 관련, 촛불국민을 배신한 행위라며 강력 규탄했다.

대전지역 60여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국가보안법폐지 대전시민행동'은 지난 1일 오후 대전시청 북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민주 인권, 평화통일을 가로막는 최대악법 국가보안법을 당장 폐지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1948년 12월 1일 최소한의 법적 요건도 갖추지 못한 국가보안법이 제정됐다"며 "국가보안법은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을 탄압했던 '치안유지법'의 이름만 바꾼 법으로, 73년 동안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을 외치고, 평화통일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탄압한 가장 악명 높은 악법"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는 적폐청산을 요구하는 국민들의 요구에 눈감은 채 사상과 양심, 그리고 표현의 자유를 가로막고 탄압하는 국가보안법을 단 한 줄도 개정·폐지하지 않았다"며 "심지어 국가보안법 제7조 찬양고무 조항 개정 등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기간 약속이기도 했지만, 대통령의 임기가 다 끝나가는 현재까지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입법·사법부, 악법 폐지·억울한 사람들 명예회복 위해 적극 나서야

그러면서 이들은 "국가보안법이 폐지되지 않는 한, 민주인권 사회도, 평화통일도 실현될 수 없음을 선언한다"며 "더불어민주당은 촛불국민을 배신하지 말고 국가보안법 폐지를 당론으로 채택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특히 "유엔 인권이사회는 1992년, 1999년, 2005년에 국가보안법 폐지를 반복 권고한 바 있고,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 국제엠네스티 등 국제사회도 대한민국 정부를 향해 지속적으로 국가보안법 폐지를 권고하고 있다"며 "국회는 국민 뜻을 외면하고, 미룰 것이 아니라 공론화를 통해 악법 폐지에 나서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반공법의 후신인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지금도 끊임없이 제기된 가운데 전북지역에서는 반공법에 갇혀 억울한 옥살이를 한 사람들이 뒤늦게 무죄로 판결되고 있지만 아직도 명예가 온전히 회복되지 못한 경우가 많다.

이제라도 입법부는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라는 많은 시민들의 주장에 귀 기울여 악법을 폐지하고, 사법부는 억울한 누명으로 옥살이를 한 사람들의 명예가 훼복되도록 적극 앞장서야 할 것이다. 

/박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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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찬양 묵인했다는 이유로 억울한 옥살이 52년 만에 '무죄’...힘 실리는 국가보안법 폐지론 -

국가보안법의 전신인 반공법에 의해 억울한 옥살이를 한 사람들에게 50여년 만에 무죄가 연이어 선고되면서 국가보안법 폐지론에 무게가 더욱 실리는 형국이다. 군산에서는 동료 선원이 북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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