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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의소리]‘삼례 나라슈퍼 사건’ 최초로 진실 밝힌 주인공, 박영희 젬마 씨

jbsori 2020. 12. 25. 15:47

[진단] 삼례 나라슈퍼 사건의 감춰진 진실

1999년 2월 발생한 삼례 나라슈퍼 사건' 재연 장면(CPBC 가톨릭평화방송 캡쳐)

 

억울한 누명으로 3명의 젊은 청년들을 3∼6년 동안 교도소에서 복역하게 한 희대의 희한한 사건이 전북지역에서 발생했다. 그런데 아직도 진실의 끝은 다 드러나지 않았다.

 

1999년 2월 완주군 삼례읍 나라슈퍼에서 일어난 '강도 살인사건'이 발생한 지 22년이 다 돼가지만 삼례 나라슈퍼 사건의 주범으로 몰렸던 세 청년들의 무죄를 최초로 밝힌 사람은 널리 알려지지 않은 채 베일 속에 가려져 있다.

 

그들의 진실을 밝힌 최초의 사람은 변호사도 언론인도 아닌, 한 평범한 주부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전북의소리가 사건 초기부터 진실을 밝히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던 주인공 박영희 젬마 씨로부터 오랜 세월 마음 속에 간직한 채 아직도 세상에 못다 알린 진실과 억울함의 실체들을 직접 들어 보았다. 

 

‘삼례 나라슈퍼 3인조 사건’, 감춰진 진실은?

 

‘삼례 나라슈퍼 사건’ 또는 ‘삼례 나라슈퍼 3인조 사건’이라고 불렀던 사건은 1999년 2월 6일 새벽, 전북 완주군 삼례읍의 나라슈퍼에서 발생한 강도치사 사건으로 알려졌다.

 

당시 언론보도와 사건기록에 의하면 ‘3명의 강도가 잠들어 있던 박 씨와 아내 최 씨, 장모 유모 할머니를 위협하여 테이프로 묶은 뒤 금품을 훔치고 달아났는데 이때 77세였던 할머니가 질식사에 이른다’고 전해졌다.

 

당시 언론들은 사건 초기부터 “강도 3인조가 삼례 나라슈퍼 유모 할머니를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고 단순 우발 사고로 보도했다. 경찰은 당시 18~19세였던 임명선·최대열·강인구씨 3명을 범인으로 지목하여 검찰에 송치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결정적인 진실이 감춰지고 말았다. 경찰이 폭행과 협박으로 허위 자백을 받아 검찰에 사건을 송치하면서 진실은 묻히기 시작했다. 

 

경찰 폭행·협박으로 허위 자백...3명 청년 검찰 송치하면서 억울한 옥살이

 

문제는 검찰에서도 그대로 이들을 기소했다. 3명 중 임명선·강인구씨는 상고를 포기하여 유죄 판결이 확정되었고, 최대열씨는 상고하였으나 기각되어 유죄 판결이 확정돼 각 3년에서 6년간 교도소에서 복역한 후 출소하였다. 

 

그러나 이들의 억울한 옥살이는 2015년 3월 재심을 신청하여 2016년 7월 재심 개시 결정이 내려지고 그 해 10월에서야 끝난다. 세 청년이 누명을 쓰고 강도치사 혐의로 복역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세상에 밝혀진 것이다. 

 

사건 발생 이후 17년이 지난 2016년에야 이 세 청년은 무죄를 선고받아 여러 영화와 드라마의 소재가 됐다. 지금도 지상파 방송의 드라마 주제로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 사건은 흔히들 유명 변호사의 노력으로 재심에 성공한 사건으로 알려졌을 뿐 가장 먼저 세 청년의 무죄를 입증하고자 노력했던 천주교 교정사목 봉사자로 활동하던 주인공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삼례 나라슈퍼 사건, 청년들 무죄 최초로 밝힌 박영희 젬마” 종교방송서 밝혀 

 

CPBC 가톨릭평화방송 11월 5일 방송(유튜브 동영상) 

 

CPBC 가톨릭평화방송은 지난 11월 5일 ‘삼례 나라슈퍼 사건, 청년들 무죄 최초로 밝힌 박영희 젬마’란 제목의 기사에서 감춰진 사실을 알려 주목을 끌었다. 세 청년의 무고함을 밝히기 위해 오랜 세월 동안 헌신적으로 노력하고 고생한 사연이 상세히 소개돼 감동을 주었다. 

 

그러나 서울언론과 지역언론들은 아직도 이러한 사실에 주목하지 않는다. 세 청년의 무죄 확정 후 오로지 한 변호사의 노력과 그와 함께 취재한 언론인(기자)으로 인해 진실이 세상에 밝혀지고 재심에 성공한 것인 양 보도했다.

심지어 최근 한 지상파 방송은 이들을 소재로 한 드라마로 시청률을 끌어올리려다 주인공 역을 맡은 배우의 음주운전으로 파장이 엉뚱하게 번진 사례도 있다. 

 

그래서다. 이 사건을 다시 복기해 볼 필요가 있다. 여러 교훈과 진실들이 여전히 묻혀 있기 때문이다. 삼례의 나라슈퍼에 강도가 침입하는 사건이 발생한 건 1992년 2월 6일 새벽이었다.

 

그런데 사건 발생 후 초기 경찰 대응이 허술했다. 3인조 강도 사건으로 규정하고 “강도들은 집 안의 할머니와 부부를 위협하고 현금과 패물을 들고 달아났다”며 “사건 이후 같은 동네에 살던 20세 안팎의 세 청년 임명선·최대열·강인구 씨를 강도치사 혐의로 체포했다”고 거침 없이 언론에 흘렸다.

 

그러자 모든 언론들은 사실인 듯 대서특필했다. 그러나 그 해 진범이 있다는 소식이 경찰에 접수되면서 사건은 새 국면을 맞는 듯했으나 부실수사로 인해 결국 세 청년들의 억울한 옥살이가 시작됐다.

 

그런데 당시 세 청년의 무죄를 처음 입증하고자 나섰던 사람은 변호인도 언론인도 아닌 다름 아닌 전주교도소에서 종교위원으로 활동하던 박영희 젬마 씨였다.

 

“저는 얼굴도 안 봤고, 그 집을 가본 일도 없는데 어떻게 기도를...?”

 

박영희 젬마 씨

 

박 씨는 “10년 넘게 교정사목 봉사자로 활동하던 전주교도소에서 우연히 쪽지를 받게 되었는데 그게 내 인생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다 준 계기였다”고 회고한다. 

 

박 씨는 “천주교 미사가 끝나고 난 뒤에 나한테 쪽지를 주고 간 노인이 있었는데 그분이 상담을 의뢰한 그 청년들을 1년 후에 만나게 됐다”며 “영세 상담 중에 만난 한 청년이 바로 주범으로 몰린 임명선이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박 씨는 당시 임명선 씨의 아픈 마음을 위로하며 세례 상담을 하다가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됐다.

 

당시 전주교도소 종교위원으로 활동하던 박 씨는 “피해 할머니 기도를 네가 하늘나라 갈 때까지 잊지 말고 수시로 해줘야 된다”며 “그 할머니를 잊지 말아야 된다고 말하자 임 씨는 ‘저는 얼굴도 안 봤고, 그 집을 가본 일도 없는데 어떻게 기도를 하느냐’ 고 이야기를 해서 깜짝 놀라 얼이 다 빠질 정도였다”고 말한다. 

 

그의 말을 토대로 박 씨는 경찰의 강압적이고 부실한 수사로 인한 허위자백이었음을 밝히기까지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박 씨는 그에게 재차 “얼굴도 못 본 사람을 네가 어떻게 죽이냐고 그랬더니 '그러니까 안 죽였죠. 나는 모르죠’라고 대답하기에 ‘그럼 왜 그랬냐고 물으니까, 두들겨 패니까”라고 답했다는 것이다.

 

“만기 복역 후 출소, 공소시효 끝나고 한참 지난 2016년 재심...못내 아쉬움”

 

박영희 젬마 씨

 

박 씨는 “그 이후로 검찰과 경찰을 찾아다니며 임 씨의 억울함을 알리고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 자기 일처럼 백방으로 뛰어다녔다”고 한다.

박 씨는 탄원서를 쓰고, 세 청년 가운데 한 명인 최대열 씨의 재심을 신청하면서 당시 상황을 전주교구에 알려 성당에서는 세 청년의 무죄를 기원하는 미사가 봉헌되기도 했다.

 

“교정사목 봉사자들은 물론, 사제와 신자들이 기도로 힘을 보탰다”고 말하는 박 씨는 “그 사이 임 씨는 요한 세례자라는 세례명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들은 재수사가 진전되지 않아 만기 복역 후 출소했고, 사건의 공소시효가 끝나고 한참이 지난 2016년이 돼서야 재심이 열렸다. 재심에는 박 씨의 딸도 변호인으로 참석했다.

 

박 씨의 딸 백선경 헬레나 씨는 삼례 나라슈퍼 사건 재심 변호인을 맡아 “엄마가 그 아이들이 꼭 풀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몇 년간 노력을 하셨기 때문에 그 일이 정말 해결이 된다는 건 너무나 기적 같은 일이었다”고 당시 소감을 방송과 인터뷰에서 밝혔다.

 

이러한 노력으로 2016년 10월 결국 세 청년은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러나 박 씨는 "지금 생각해도 너무 늦은 재심 결정이 못내 아쉽다"고 말한다.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에서도 이들의 무죄를 위해 함께 노력한 변호사와 기자에게 자신의 집까지 내어주며 물심양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고 말하는 박 씨는 “힘들었던 모든 순간을 떠올리면서도 하느님의 이끄심을 느꼈다”고 무죄 판결에 대한 소감을 밝혔다.

 

최대열 씨 재심 신청 하지 않았더라면 영원히 묻히고 말 사건, 그런데...

 

박영희 젬마 씨(CPBC 가톨릭평화방송 화면 캡쳐)

 

박 씨는 재소자들이 정성으로 보낸 편지들을 빠짐없이 보관하고 있다. 그는 “편지의 한 사람 한 사람 다 기억이 난다”며 “참 행복했다”고 말하지만 재심 이후 안타깝게도 박 씨는 삼례 나라슈퍼 사건의 피해 청년들과 연락을 이어가지 못하고 있다. 

 

무언가 말 못할 사연이 있어 보이지만 "늘 기도로 대신한다"고 그는 말한다. 

“어려움에 처한 이웃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 교정사목 봉사자가 만들어낸 이 기적은 착한 사마리아인의 선행처럼 여겨진다”고 CPBC 가톨릭평화방송도 박 씨에 관한 방송을 마무리했지만 많은 아쉬움과 여운을 남겼다. 

 

다시 당시 사건으로 돌아가 보자. 1999년 발생한 삼례 3인조 강도치사 사건의 원본 기록은 보관기간이 만료되어 모두 폐기됐다. 남아 있지 않은 기록은 박 씨가 최초로 최대열 씨의 재심을 신청했던 기록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이를 토대로 이 사건 재심을 신청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박 씨가 최대열 씨에 대한 재심을 신청하지 않았었다면 이 사건은 현재와 같이 다시 재심이 열릴 수 없었을 것이고, 진실은 영원히 밝혀지지 못하였을 것이다. 아마 삼례 3인조 나라슈퍼 사건은 평생 억울함을 가슴에 품은 채 살아가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박준영 변호사는 판결 이후 언론과 인터뷰 및 기자회견 등에서 “열악한 환경에 있는 지적장애인이나 미성년자가 범인으로 몰려 누명을 썼고, 이런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해야 할 수사기관이 가혹한 수사를 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이 사건 재심에 많은 노력이 필요했지만 다른 재심 사건과 달리 별로 어렵지 않게 진행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박 씨의 헌신적인 노력과, 무고한 청년들을 위해 재심을 신청한 최초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성탄을 맞는 박 씨의 마음은 당시 무고한 세 청년이 지금도 가슴 언저리에 무겁게 남아 있다. 그래서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또 기도한다. 

 

/<전북의소리> 박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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