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의소리
[전북의소리]"삼례 나라슈퍼사건 재심, 허위진술 조사요청" 파문 본문
끝나지 않은 삼례 나라슈퍼사건 진실(1)
'삼례 나라슈퍼 3인조 강도치사 사건'(삼례 나라슈퍼사건)은 1999년 2월 6일 새벽 완주군 삼례읍의 나라슈퍼에서 발생한 강도치사 사건으로 3명의 강도가 당시 잠들어 있던 박 씨와 아내 최 씨, 장모 유모 할머니를 위협하여 테이프로 묶은 뒤 금품을 훔치고 달아난 사건으로, 이때 77세였던 유모 할머니가 질식사해 강도치사 사건으로 알려졌었다.
그런데 사건 발생 9일 만에 인근에 살고 있던 19~20세의 청년 3명(최대열·강인구·임명선)이 범인으로 지목돼 경찰에 붙잡혔다. 이들은 범행 사실을 자백한 것으로 밝혀져 재판에 회부됐다. 이후 대법원까지 갔으나 이들은 최종적으로 3~6년의 징역형을 선고 받고 복역을 마쳤다.
삼례 나라슈퍼사건, ‘권력이 사회적 폭력’이 될 수 있음을 일깨워 준 사건

그러나 이들은 "조사 과정에서 경찰의 폭행으로 인해 거짓 자백을 했다"고 10년 이상 주장해왔다. 또한 1999년 11월 부산지검은 진범이 따로 있다는 제보를 받고 용의자 3명을 검거한 후 자백을 받아낸 뒤 전주지검으로 넘겼으나, 전주지검은 이들에게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부실수사 논란에도 불구하고 곧 사그라들었고 숱한 억울함 호소와 재수사 요청이 있었지만 묵살당하다 세상의 관심 속에서 잊히는가 싶었으나 2016년 1월 자신이 이 사건의 진범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등장하면서 사건은 반전되었다.
그는 1999년에 무혐의 처분을 받은 용의자 3명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유족 앞에서 사죄를 하고, 자신 대신 무고하게 살인 누명을 뒤집어 쓴 피해자 3명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협력하겠다고 밝히면서 상황이 급격히 뒤집어졌다.
나머지 진범 중에서 한 명은 2015년 말에 자살, 그리고 남은 한 명은 자신의 범죄를 부인했지만 결국, 2016년 10월 28일 최초의 범인들로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3명은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아 큰 충격을 주었다.
사법 권력의 행위가 때로는 사회적 폭력이 될 수 있음을 일깨워 준 사건으로 기록된 사건이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2019년 11월 22일 방송)
그런데 이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기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또 다른 비윤리적 행위와 위증에 관한 문제가 제기됐다. 현재 대검찰청 과거사진상조사단에 접수된 이 문제는 당시 재심을 담당했던 박준영 변호사와 재심을 위해 헌신적으로 도왔던 민간인(박영희 씨) 사이에 발생한 사안이다.
<전북의소리>는 2020년 12월 ‘‘삼례 나라슈퍼 사건’ 최초로 진실 밝힌 주인공, 박영희 젬마 씨‘란 기사에서 이 사건의 숨겨진 진실에 대해 한 차례 보도한 바 있다.
[관련 기사] ‘삼례 나라슈퍼 사건’ 최초로 진실 밝힌 주인공, 박영희 젬마 씨
그러나 최근 이 사건의 재심 과정에서 허위 진술 등의 문제가 공식 제기됨에 따라 <전북의소리>는 ‘끝나지 않은 삼례 나라슈퍼사건 진실’을 주제로 실상을 시리즈로 보도하기로 한다.
이번 기획 시리즈는 이 사건의 재심 과정에서 발생했지만 자세히 밝혀지지 않은 내용을 대검찰청 과거사진상조사단에 의뢰한 민원인의 진상조사 요청 내용과 장시간 이어진 당사자와의 인터뷰, 민원인 및 박준영 변호사 사이에 오간 내용증명 등을 중심으로 보도하며, 보도 이후 제기되는 반론 또는 추가적인 내용 등은 기획 시리즈와 무관하게 계속해서 보도할 예정이다. /편집자주
삼례 나라슈퍼사건은 언론을 통해 그동안 많이 알려진 억울한 사건이다. 특히 1999년 사건 발생 9일 만에 인근에 살고 있던 10대와 20대 청년 3명이 잡혔지만 경찰의 가혹 행위로 인한 강압 수사와 허위 자백이 무죄를 유죄로 만든 사건이다.
그러나 3~6년의 징역형을 마친 후에 밝혀진 무죄라는 점에서 '한국 사법부 역사상 대표적 국가 권력에 의한 폭력 범죄'로 기록됐다. 이에 대해 많은 언론들이 주목하며 보도했다.
특히 한겨레(사회2부)는 2017년 제15회 언론인권상(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또한 SBS의 ‘그것이 알고 싶다’는 2002년 5월 18일에 이 문제를 ‘이상한 3인조 강도’란 제목과 함께 조명했으며, MBC PD 수첩도 2015년 11월 10일 ‘만들어진 자백, 뒤바뀐 범인’ 등에서 이 문제를 심층적으로 다루었다.
그런데 이러한 보도에는 항상 등장하는 인물들이 다수 있다. 박준영 변호사 뿐만 아니라 재심이 있기까지 사건을 추적하고 3인조를 도왔던 다른 변호사들과 언론인(기자와 PD), 피해자 주변의 민간인들까지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박영희 젬마 씨의 삼례사건 무죄 입증 노력, 시작과 배경은?

CPBC 가톨릭평화방송(2020년 11월 5일 방송)
그 중에서도 박영희 젬마 씨(71)는 이 사건 초기부터 뗄레야 뗄 수 없는 사연을 지니고 있는 인물이다. 올해로 71세인 박 씨는 21년 전인 1999년 2월 당시 발생했던 삼례 나라슈퍼사건 범인으로 지목되었던 3인조를 전주교도소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다.
천주교 교도소 교화위원으로 활동하던 그는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의 임명선, 최대열, 강인구가 삼례 나라슈퍼사건 범인으로 지목돼 경찰의 폭행과 협박으로 허위 자백을 받아 검찰에 송치됐다는 사실을 교화 과정에서 일찍이 인지하고 그들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기 시작했다.
3남 1녀를 둔 평범한 가정주부였던 박 씨가 이러한 사실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게 된 계기는 1991년부터 전주교도소 종교위원으로서 다른 교화위원들과 함께 전주교도소를 정례적으로 방문하며 무연고 죄수나 장기수들에게 음식을 제공하고, 고충을 상담하면서 봉사활동을 펼쳐왔기 때문이다.
그러던 1999년 여름 어느 날 박 씨는 봉사활동과 미사를 마치고 나오려고 할 때 당시 전주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강모 씨로부터 “함께 복역 중인 임명선을 꼭 상담해주세요. 부탁합니다”라고 적힌 쪽지를 받으면서 삼레 나라슈퍼사건의 진실 규명에 나서게 됐다.
그 후 박 씨는 전주교도소에서 천주교 세례를 받기 위한 예비자 상담시간에 임명선을 만나 “이제는 돌아가신 할머니를 위해서 기도를 드려주세요”라고 하면서 상담을 시작하려는 순간, 임명선은 “난 사람을 죽이지 않았어요. 얼굴도 모르는데 어떻게 돌아가신 할머니를 위해 기도를 할 수 있습니까?”라고 말하는 것을 이상히 여겨 재심을 결심하게 됐다고 한다.
박 씨는 “처음에는 판결이 확정되어 형을 살고 있는 임명선의 말이 믿기지 않았는데, 임명선과 계속 대화하면서 그의 말이 사실이고,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수감생활을 하고 있다는 의심을 가지게 됐다”며 당시 상황을 회고했다.
임명선으로부터 이 같은 어이없고 황당한 주장을 듣고 그는 먼저 전주지방검찰청에 사건을 수사하고 기소한 검사가 실제 있는지 등을 확인했다. 이어 박 씨는 교화위원 이모 씨와 함께 최초 사건을 수사한 완주경찰서에 직접 찾아가 사실관계 등을 확인했다.
그러나 경찰서에서 이 사건에 관한 정보를 알려주지 않자 다시 사건 현장인 삼례에 있는 나라슈퍼를 찾아가 피해자들과 주변에 사는 사람들, 현장에 남아 있는 물건 등을 살펴보며 사건 당시를 떠올리기도 했다.
특히 피해자들 중 나라슈퍼에서 남편과 함께 일하다 물품을 강취당한 최모 씨를 찾아 다녔지만 이미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간 바람에 그로부터는 범인들에 관한 상세한 내용을 들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박 씨는 포기하지 않고 3명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가족들에게 알리고 도움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에 언론에 보도된 기사들을 토대로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어렵게 가족을 찾아 나섰다고 한다.
박 씨는 “마침내 임명선의 부모와 여동생 둘, 고모, 강인구의 아버지, 최대열의 아버지와 누나 등을 찾아가 직접 만나고 서울에 사는 강인구의 고모와 통화도 했다”며 "그 후 재심 청구를 위해 더욱 노력했다"고 회고했다.
진범 음성 듣자마자 울면서 “저 목소리가 틀림없다”

MBC PD수첩(2015년 11월 10일 방송)
그러나 박씨가 어렵게 만나본 수감자 3인의 가족들은 모두 생활형편이 어려워서 재심청구를 도울 수 없는 상황이었다. 박씨는 "전주지방법원을 수 차례 찾아가 백받으로 노력한 끝에 수사기록을 확보할 수 있었다"며 "그 기록에는 부산에서 잡혔다는 진범에 대한 내사 기록도 함께 있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따라서 이들이 진범이 아니라는 사실에 더욱 확신을 가진 박 씨는 가족들을 만나 이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며 피해자 최모 씨와 함께 주범을 찾아 나섰다. 박 씨는 피해자 최 씨와 또 다른 교화위원 등과 함께 부산지검의 담당 검사를 찾아가 당시 진범으로 지목된 부산 3인조 강도 사건을 수사했던 담당 검사 협조로 3인조 진범들의 음성을 촬영한 영상을 들을 수 있었다.
이 때 피해자 최씨가 진범의 음성을 듣자마자 울면서 “진범의 목소리가 틀림없다”고 말하는 것을 보고 재심을 하기로 더욱 마음을 굳혔다고 한다. 박 씨는 "2000년 부산지검에서 담당 검사를 만나고 온 직후 민변 소속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재심을 청구했다"며 "그러나 임명선, 강인구로부터는 재심에 필요한 최종 서류를 받지 못해 부득이 최대열에 대한 재심만을 청구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 씨는 “교도소 측과 다른 교화위원들이 “재심이 받아들여질 가능성도 거의 없는데 괜한 분란을 일으키지 말라”며 만류하여 결국 서류를 갖출 수 있는 최대열만을 재심하게 됐다“고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아쉬워했다.
결국 최대열에 대한 재심을 신청했으나 예상과 달리 재심사건(전주지방법원 2000재고합1)이 2000년 9월 29일 기각되고 말았다. 이에 박 씨는 개인의 힘만으로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어 적극적으로 이 사건을 언론사에 제보했다.
그 결과, 2000년 12월 10일 MBC ‘시사매거진 2580’에 이 사건에 관한 내용이 방영될 수 있도록 하고, SBS 2002년 5월 18일 ‘그것이 알고 싶다’에 방영될 수 있게 하여 이 사건에 대하여 좀 더 상세하게 알릴 수 있도록 노력했다고 한다.
이어 전주지법의 재심 기각 결정에 대해 직접 광주고등법원에 가서 항고장을 접수했는데, 항고사건(광주고등법원 2000로6) 역시 2001년 기각되고 말았다. 이어 서울의 민변 소속 김모 변호사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하여 재항고를 했지만 재항고마저 기각되어 최대열은 억울함을 벗지 못한 채 이 재심 사건은 일단락되는 듯했다.
재심에 또 재심 그러나 기각...실망

한겨레 2월 18일 기사(홈페이지 캡쳐)
이러한 재심 신청 노력의 실패 이후 당시 재심 전문변호사로 유명한 박준영 변호사가 등장하게 된다.
최대열에 대한 재심 신청 기각 결정에 대한 재항고를 신청할 때 도움을 주었던 민변 소속의 김모 변호사로부터 이 사건에 관한 기록을 토대로 결국 2015년 3월 재심을 다시 신청하기에 이른다.
원래 1999년 발생한 삼례 나라슈퍼사건의 원본기록은 보관기간 만료로 모두 폐기 되어 재심이 불가능했다. 하지만 천만다행으로 박 씨가 최대열의 재심을 진행한 기록이 남아 있었다. 이 기록을 바탕으로 사건 재심이 가능했던 것이다.
만약, 박 씨가 최대열에 대한 재심을 신청하지 않았었다면 이 사건은 재심이 열릴 수 없었을 것이고, 진실은 영원히 밝혀지지 못했을 것이다. 아울러 삼례 나라슈퍼사건은 억울함으로 풀지 못하고 평생 가슴에 품은 채 살아가야 했을 것이다.
이처럼 박 씨가 최대열에 대한 재심을 신청한 기록이 남아 있어 이를 토대로 재심이 진행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큰 재심 사건이다. 그런데 사건이 재심의 성공으로 종료되는가 싶었는데 문제가 또 다시 불거진 것은 최근이다.
2018년 박 씨는 언론에 보도되고 있는 삼례 나라슈퍼사건 재심 과정의 오해와 거짓 등을 바로잡기 위해 대검찰청 과거사 진상조사단에 ‘재심 과정에서 진술인의 인격권 침해사실 등에 관한 진상규명’을 요청함으로써 이 시건은 또 다른 진실공방으로 이어지게 됐다.
박준영 변호사와의 첫 만남, 그러나...

뉴스1, 1월 28일 기사(홈페이지 캡쳐)
박 씨는 ‘천주교 교화위원’ 자격으로 대검찰청에 진상규명을 요청한 자료에서 “삼례 세 청년의 무죄 확정은 오랜 세월 진술인 본인의 큰 소망이었다”면서 “그러나 재심 재판 과정의 면면은 기만과 부도덕한 행위로 인해 이해하기 힘들었고 이 사건의 진실을 밝힌 과정은 지금도 호도되고 있으며, 본인은 졸렬한 모습으로 남의 노력을 내 것으로 내세우는 사람으로 되어있다”고 서두에서 전제했다.
이어 박 씨는 “1998년 당시 소 브루셀라 백신파동 사건으로 전북대학교 수의과대학 학장으로 재직했던 남편이 구금된 참담한 그 때에 전주교도소 수감자들의 천주교 세례준비를 위한 상담을 하던 중 삼례 3인조 강도치사사건(이하 ‘삼례 사건’)의 주범으로 지목된 임명선을 만났다”며 “두 사건을 어린 네 자녀를 둔 가정주부가 온 힘을 다해 미친 듯이 조사한 이유는 두 사건 모두 억울함 그 자체였고 하나하나 실타래처럼 엮긴 매듭을 오직 신앙에 의지하며 무고한 범인으로 몰렸던 당사자들의 아픔이 내 것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박 씨는 “2013년 말 박준영 변호사가 자신의 자택으로 찾아와 삼례 사건의 재심을 다시 하고 싶다는 의사를 피력하면서 박 변호사와 만남의 인연이 시작됐다”며 “2014년 남편과 큰 사위와 함께 박 변호사 수원 사무실을 방문하여 ‘삼례 3인조 강도치사 사건’과 남편의 ‘소 브루셀라 사건’이 너무나도 억울한 사건임을 설명하면서 어렵지만 재심을 추진하여 달라”고 정식 상담한 내용 등을 자세히 기술했다.
“박 변호사, 언론에 과거 최대열 재심청구 사실 배제” 주장
또한 박 씨는 “재심 이후 박준영 변호사는 일반 국민들로부터 애틋한 사랑을 받아 삼례 사건을 주제로 한 출판과 북콘서트 개최, 영화제작 등을 하였으나 사전에 진술인에게 어떠한 통보도 없었다”며 “언론에 보도된 재심 과정의 내용 등에서 과거 최대열의 과거 재심 청구 사실과 재심을 위한 노력 등은 철저히 배제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박 씨가 주장하는 가장 핵심적인 문제 제기는 재심 공판에서 이뤄진 허위 진술 논란이었다.
진상규명 요청 자료에서 박 씨는 “2016년 6월 1일 재심 재판에서 박준영 변호사는 누구보다도 진술인(박 씨)의 과거 재심청구 과정을 잘 알고 있음에도 의도적으로 최대열에 대한 심문 과정에서 ‘재심서류는 교도소에서 같이 수감했던 어른이 써 준 것인가요?’라고 묻자 최대열은 ‘그렇다’고 대답했으며, 임명선은 불과 5분전 기억하던 재심청구 사실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진술했다”고 밝히며 증거 자료를 제출했다.
“재심 과정 허위 진술 유도” 문제 제기, 진상규명 요청

박영희 젬마 씨.
이어 박 씨는 “이날 이러한 진술을 모두 들었던 본인의 딸 백선경 변호사는 가슴이 아파 법정에서 눈물을 터뜨렸다”면서 “공개법정에서는 단 한 번도 본인의 이름이 거론조차 되지 않은 이유를 알게 되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게다가 박 씨는 “재심 청구인들이 법정에서 거짓 진술을 하였음에도 박준영 변호사는 2016년 7월 6일 본인과 통화에서 ‘어떤 부분이 잘못되었는지 모르겠다. 공판 녹음을 들려드리고 싶다. 잘못된 점 있으면 사과하겠다’고 하면서 같은 해 7월 8일 재심 개시 결정일에 출석해 달라고 했다”면서 “본인은 2000년경 부산 검사를 찾아가 모든 사실관계를 확인했고, 2000년 5월경 최대열에 대한 재심청구를 했음에도 재심 청구인들로 하여금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하도록 한 것이었음을 알게 됐다”고 덧붙였다.
그는 “제대로 수사 및 재판을 받지 못한 억울한 아이들을 위해 밤낮 없이 뛰어다닌 본인은 과거에 재심 청구 사실로 교도소 측의 무언의 압박을 받아 10여 년 간 일하던 천주교 교화위원 봉사직을 그만두었는데, ‘파산 변호사, 또는 재심 전문 변호사’라는 명분을 내세우면서 펀딩을 하고 결론적으로 변호사가 자기 이익을 위하여 재심 청구인들로 하여금 법정에서 허위 진술을 하도록 하여 과거의 억울한 재판과 마찬가지로 재심 재판에서 사건의 진실이 왜곡된 재판 기록물을 남기게 됐다”고 밝혔다.
대검찰청, 해당 민원 전주지법에 송부...결과 주목

2월 16일 박영희 씨에게 수신된 대검찰청 처리결과 공문
결국 박 씨는 “그들의 후속담은 훈훈한 미담으로 남아 있고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을지 모르겠으나, 엄연한 사실 왜곡의 증언이 있었고 과거사를 밝힘에 있어 어떠한 목적이나 이익을 떠나 진실을 기반으로 해야 함은 너무나도 기본적인 소양이기에 위와 같은 사실들은 변호사의 윤리를 크게 벗어 난 것”이라고 강조한 뒤 “이 시대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임을 밝혀 두고자 한다”며 철저한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한편, 이러한 박 씨의 진상규명 요청에 대해 대검찰청(검찰수사관 형사3과)은 2월 16일 “전주지방검찰청에 위의 민원을 송부하여 처리케 하고, 그 처리 결과를 당사자에게 통지하도록 조치하였다”고 밝혀 추후 진행 과정과 결과에 귀추가 주목된다.
/<전북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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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례 나라슈퍼사건 재심, 허위진술 조사요청" 파문 - 전북의소리
\'삼례 나라슈퍼 3인조 강도치사 사건\'(삼례 나라슈퍼사건)은 1999년 2월 6일 새벽 완주군 삼례읍의 나라슈퍼에서 발생한 강도치사 사건으로 3명의 강도가 당시 잠들어 있던 박 씨와 아내 최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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