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의소리
[전북의소리]왜 다수인 지방이 소수인 서울에 지배당할까? 본문
[지방부활시대 ⑨] 서울의 지방 지배 비결
지금의 대한민국은 외세의 지배를 받지 않는 독립국가이지만, 모든 지역과 국민이 평등하게 주권을 행사하는 민주국가는 아니다. 중앙이 지방을 지배하고 통치하는 '내부 식민지' 지배 체제가 아직 강고하기 때문이다.
다수결 원칙은 민주주의 국가의 기본적 작동원리이다. 누구든지 권력을 획득하거나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책을 만들려면 다수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 물론 다수가 항상 올바르거나 현명한 결정을 하는 것은 아니다.
독일의 히틀러도 다수 국민의 지지를 받아 합법적으로 선출된 권력자였다. 영국 국민들 다수가 국민투표를 통해 유럽연합 탈퇴를 결정했지만, 현명한 선택이라는 평가보다는 어리석은 선택이라는 평가가 훨씬 많다.
지방의 적, 서울이 아니라 다른 지방...갈등 심화

국회의원 대다수는 지방에서 선출한다. 대통령 선거 역시 지방유권자가 서울유권자보다 훨씬 많다. 그럼에도 지방 거주 국민들은 '서울공화국'의 들러리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2017년 5월 10일 자; '연합뉴스', 2016년 1월 24일 자.
대한민국이 다수결 원칙에 따라 작동되는 민주국가이지만 중앙과 지방 간의 관계에서는 다수결 원리가 잘 작동하질 않는다. 수적으로는 소수인 중앙이 다수인 지방을 견고하게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사람들은 전국 인구의 20%에 불과하고, 20대 국회의 지역구 국회의원 253명 중 서울지역 의원은 49명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의 정치, 행정, 경제, 문화, 언론 등 국정 거의 모든 분야에서 서울사람들이 주도권을 쥐고 있다.
왜 다수인 지방사람들이 소수인 서울사람들을 당하지 못하는 것일까? 서울사람들이 정치 권력과 경제 자본과 문화적 기득권을 독점하는 비결은 지방에 있다. 우선 지방의 분열이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라는 손자병법의 명제가 서울과 지방 간의 대결 구도에 바로 적용된다. 서울은 쉽게 뭉치고, 지방은 늘 흩어져 있으니 두 지역이 싸울 때 누가 이길지는 자명해진다. 지방사람들이 다수의 힘을 가지려면 서로 연대해 뭉쳐서 서울과 경쟁해야 하지만 그럴 힘이 없다.
더욱이 군사독재 시절 설정해 놓은 영호남 간의 대립 구도가 여전히 남아있는 현실에서, 지방이 연합해서 서울의 횡포를 막기란 역부족이다. 반면 서울사람들은 손쉽게 결집한다. 노무현 정부가 수도를 세종시로 옮기려 하자 서울 시민들은 입법, 사법, 행정은 물론이고 언론까지 동원해 수도 이전을 무력화시켰다. 그에 대항하는 지방민의 결집은 없었다.
당시 서울사람들과 대립한 사람들은 충청도민들로 국한되었다. 십수 년째 해결되지 못해온 영남권 신공항 문제도 지방의 분열양상을 잘 보여준다. 각 지방의 이익을 우선 챙겨야 하는 상황에서 지방의 적은 서울이 아니라 다른 지방이 된다. 지방이 연대하지 않고는 서울의 권력 독과점에 저항할 수 없지만, 타지방과 연대하기보다는 오히려 지방간의 갈등이 심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영남권 신공항 발표 전에는 호남선 KTX를 두고 대전시와 호남 간의 대립이 부각되었다. 서울사람들은 이러한 지방 간의 갈등을 방관하고 조장하면서, 지방의 낙후성과 무능함을 은연중 강조시킨다.
지방의 청년들, 자신의 고향 숨기고 고향 떠날 준비에 여념이 없어

언론은 수도권과 지방간의 갈등보다는 지방간의 갈등에 주목하고, 그러한 갈등의 원인을 사소하고 불합리한 것로 치부해 지방은 낙후하다는 고정관념을 강화시킨다. 출처: '한겨레', 2012년 6월 5일 자; '서울신문', 2017년 5월 10일 자; '한국일보', 2020년 9월 25일 자.
물론 이러한 고정관념은 서울사람들이 장악한 언론과 미디어를 통해 반복 재생산된다. 다수인 지방이 소수인 서울의 지배를 받는 또 다른 이유는 지방사람들이 차별과 종속을 거부하고 저항하기보다는 오히려 당연시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지방사람들은 차별과 종속구조를 해체하기보다는 그 구조에서 자신들의 위치를 바꾸는 전략을 택했다. 지방을 탈출해 차별과 종속으로부터 해방되는 길을 택했다. 지방의 장년층은 내 자식만이라도 서울사람 만들겠다고 공을 들인다.
지방의 청년들은 자신의 고향을 숨기고, 고향을 떠날 준비에 여념이 없다. 언젠가는 서울에서 성공하리라는 판타지에 빠져 노량진 고시촌의 거류자가 된다. 지방의 차별과 종속은 미디어를 통해 더욱 확고한 고정관념으로 바뀌었다. 공영방송에서 버젓이 지방사람들을 촌사람들이라고 비하하고 우스갯거리로 만들어도 문제제기하는 지방사람들이 드물다.
대한민국 국민이지만 지방에 산다는 이유로 차별받는 소수자임을 자인해야
대한민국 미디어는 철저하게 서울 중심적이다. 과거에는 서울에서 만든 신문과 방송이 이제는 네이버나 다음과 같은 인터넷 대기업들이 끊임없이 서울 중심 문화를 만들어낸다. 현재의 지방 거주 디지털 세대들에게 지역방송이나 지역신문과 같은 지역 미디어는 무의미한 존재가 되어 버렸다.
지방사람들은 인터넷 덕분에 서울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서울에서 만드는 미디어 문화상품을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면서 자신들도 서울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다는 착각을 하고 산다. 서울로 일자리를 구하러 갈 즈음에야 비로소 자신들이 2류 국민으로 차별받고 있음을 깨닫게 되지만, 누구에게 하소연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 자신들이 지방민들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에는 세상 모든 게 다 있는 것 같지만 없는 게 하나있다. 바로 쓰레기 소각장이다. 편리한 것은 자기 지역에 불편한 것은 지방으로 쫓아내는 것이 서울의 성장비결이다. 출처: '중앙일보', 2019년 5월 28일 자.
한국의 청년들이 성차별, 학력차별, 연령차별 등에 대해서는 민감하지만 지방차별에 대해선 여전히 침묵하는 이유이다. 지방의 차별이 해소되려면 지방이 서로 연대해서 기득권을 내어 놓지 않으려는 서울과 싸워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방민들 스스로가 지방민임을, 즉 대한민국 국민이지만 지방에 산다는 이유로 차별받는 소수자임을 자인해야 한다.
같은 처지에 있는 타 지방민들과 경쟁하고 대립하기보다는, 서로 연대해 다수를 만들어 소수인 서울을 제압해야 한다. 그때에야 비로소 서울과 지방이 균형을 이루는 진정한 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계속)
※이 글은 장호순 교수의 저서 <지방부활시대>에서 필자의 동의를 얻어 발췌해 연재한 글입니다.
/장호순(순천향대 신방과 교수)
http://cms.jbsori.com/news/articleView.html?idxno=4132
왜 다수인 지방이 소수인 서울에 지배당할까? - 전북의소리
지금의 대한민국은 외세의 지배를 받지 않는 독립국가이지만, 모든 지역과 국민이 평등하게 주권을 행사하는 민주국가는 아니다. 중앙이 지방을 지배하고 통치하는 \'내부 식민지\' 지배 체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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