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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각시붕어-축원기도(3) 본문
이용이 소설 '각시붕어'
기차는 조성역을 출발했다. 벌교 기차역을 향해, 시커먼 연기를 내뿜으며 요란스럽게 달려갔다. 40여분 정도가 지나갔다. 생선 냄새 풍기는 벌교 기차역에 도착했다.
벌교역에서 한참을 쉬던 기차는 다시 물과 석탄을 공급받았다. 힘을 비축한 후에 여수를 향해 달려갔다. 여수역에 내려서 향일암 쪽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하였다.
4시간을 울퉁불퉁한 자갈길을 힘들게 걸어갔다. 향일암 앞에 도착했다. 송화자는 향일암 안내소에서 스님을 만났다. 이고 온 공양미를 내려놓았다. 스님의 안내를 받아 향일암의 설립 및 역사와, 대웅전, 관음전, 삼성각 등 경내의 곳곳을 둘러보았다.

향일암은 여수 돌산도의 끝자락, 여수에서도 가장 남쪽 끝에 자리한 작은 절이었다. “해를 향한 암자를 뜻한다”고 했다. 또한 사찰 이름에 “암”이라고 붙이는 것은 “본 절이 아니고 큰절에 속해 있는, 조그마한 암자를 뜻할 때 붙인다”고 설명했다.
향일암은 조계종인 화엄사의 말사로 지어졌다. “원효대사가 659년 선덕여왕 8년에 기도중, 관세음보살을 친견하고 원통암이라는 이름을 지어 창건했다”고 한다.
그 후 고려 광종때 윤필대사가 “산의 형세가 마치 금 거북이가 불경(경전 바위)을 등에 지고 용궁으로 들어가는 것 같다”고 하여 “금오암 으로 바꿔 불렀다.”고 했다.
그 후 임진년 조선 숙종 때, 전쟁으로 건물들이 불에 타 사라졌다. 1715년에 인묵대사가 수행 정진하던 중, 지금의 자리에 대웅전을 짓고 금불상을 봉안했다. 암자를 옮기면서 “향일암으로 이름 지어, 지금까지 불리어 내려오게 되었다”고 한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향일암에서...
향일암은 불교를 믿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남해 보리암, 강화 보문사, 낙산사 홍련암 등과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관세음보살님이 상주하는 성스러운 곳이라 해서, 해수관음 성지로 꼽히고 있다.”고 했다. 또한 “4대 관음기도처라 해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어, 계절을 가리지 않고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소원을 빌러온다.” 했다
또한 “관음성지는 기도 발원을 하게 되면, 그 어느 곳 보다 더 관세음보살님의 가피를 받아서 소원을 성취하는 곳으로 전국에 널리 알려져 있다.” “석가모니불을 모시는 것이 아니라, 관세음보살을 보존불로 모시는 절이라 불리고 있다”고 했다.
관세음보살은 “관음보살 또는 관자재보살”이라고도 불린다. 수 많은 보살가운데 한분이며, 자비로 위험에 처한 중생을 구제하고 이끄는 보살이다. “모든 곳을 살피는 분”이나 “세상의 주인이라는 뜻을 가졌다.” “공덕과 기적은 “관음경” “법화경” 등 많은 불교 경전에 기록 되어 내려오고, 일반인에게 널리 숭상되어 왔다“고 한다.
신라 이후 민중들 삶에 깊숙이 자리 잡은 친근한 보살로, 동서고금을 통해 잘 알려져 있다. “대자대”를 나타내 불교와 토속신앙이 결합되는데 큰 역할을 했다“한다.
이렇게 공적이 많은 관세음보살은 “모든 중생이 해탈할 때까지 자신은 성불하지 않겠다.”고 맹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공덕은 일반인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이라는 불교신도들이 늘 암송하는 문장은, 원효대사가 만든 것이다. 나무는 “알현합니다”의 뜻이고 아미타불은 “서방세계를 관장하는 부처”에 관세음 보살을 붙여서 부르는 말이다. 이는 민중들이 석가모니와 함께 관세음보살을 매우 존경하고 친근하게 여기며, 의지하고 살아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향일암 입구에서 향일암을 향해 올라갔다. 사바의 세계 삶의 시험에 지지말고, 승승장구하라는 등용문이 나왔다. 이문을 통과하면, 민중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마주치는 난관을 부처님의 가피로 헤쳐 나갈 의지를 갖게 된다. 아울러 끊임없는 인내와 노력으로 성공을 이루고자 하는 의지를 실현하게 된다는 문이었다.
그림같이 펼쳐진 바다를 쳐다보며, 송화자는...

조금더 오르니, 용과 거북을 형상화한 우물이 있었다. 다음에는 향일암으로 들어가는 일주문 역할을 하는 “불이문”이라는 돌문이 나왔다. 돌문사이로 지나가니, 향일암 대웅전이 먼저 눈에 띄었다. 이어 종각과 대웅전 앞에는 넓은 남해 바다가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금방 손에 잡힐 듯 아름다운 한 폭의 수채화를 그려내고 있었다.
대웅전 안을 들여다보니, 부처님 세분이 모셔져 있었다. 옆에 있는 돌 틈사이로 만들어진 신비로운 돌계단을 올라가자, 관세음보살을 모시고 있는 관음전이 나왔다. 관음전 앞으로 옥구슬처럼 푸른 남해바다가 끝없이 펼쳐져 넘실거리고 있었다.
관음전 안의 관세음보살은, 민중들의 번뇌와 고통을 안타까워하며 고민하고 있었다. 깊은 고뇌를 머금은 얼굴로 남해바다를 쳐다보고 있었다. 마치 민중들의 고통을 해소해 주기위해, 깊은 속마음으로 노심초사 하고 있는 모습처럼 진지해 보였다.
그림같이 펼쳐진 바다를 쳐다보며, 송화자는 관세음보살님의 위대한 공덕에 감사드렸다. 영심을 어여삐 여겨 돌봐 주십사하고 마음깊이 빌었다. “향일암의 여명”이라는 시를 정성을 다해 소리죽여 읊었다.
향일암의 여명
옻빛바다 저 너머로
솟아오르는
불덩이 같은 아침 해가
내 살 속에서 자라고 있는
망상의 씨앗 한 톨
내 뼈 속에 쌓여있는
욕심 한 다발
내 핏줄을 타고 흐르는
번뇌를 태운다
검붉은 바닷물은
높은 파도를 타고
시공을 초월한 머나먼 우주로
나를 띄워 보내고 있다.

"꿈에 나타났던 태백선인 말 듣고 마음에 걸려 축원기도 드리러...”
절 내부 구경을 마쳤다. 점심공양에 참석했다. 무로 만든 김치는, 향이 좋고 물맛이 깔끔한 물김치와 아삭아삭한 소리가 입안 가득이 울려 퍼지는 총각김치였다. 가죽나물은 가죽나무의 초순을 재료로 하여 고추장에 무쳐서 숙성시킨 것 같았다.연근 머위 마늘 고추 등을 재료로, 짜지도 않고 금방 채취해 담근 것처럼 아삭아삭한 장아찌 등 각종 야채로 만든 반찬이 나왔다.
점심공양이 끝나고 후, 주지스님을 뵈었다. 송화자가 “꿈에 나타났던 태백선인의 말을 듣고서 마음에 걸려, 관세음보살에게 축원기도를 드리러왔다”고 말씀드렸다.
주지스님께서 한참을 생각하시더니 “향일암에서 모시는 관세음보살은 중생들을 어여삐 여겨, 기도를 들어 주신다”고 했다. “관세음보살 보문품”에 있는 계송 부분을 중심으로 “관음신앙의 네 가지 상념, 청명, 예배, 공양”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관음신앙의 실천 방법에 대해, 알기 쉽게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다. “첫째는 상념으로서, 항상 관세음보살님을 생각한다는 뜻이다. 앉으나 서나, 오고가고, 쉴 때나 일할 때 등 항상 관세음보살을 생각해야한다.” “둘째는 청명으로, 관세음보살 명호를 부르는 것으로 늘 관세음보살 해야 한다”고 알기 쉽게 사례를 들면서 설명 했다.
그리고, “셋째는 예배로서 관세음보살께 항상 절을 하는 것으로, 1배, 2배, 백배, 천배..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말고, 시간이 날 적마다 관세음보살님을 향해 예배를 올려야 한다”고 가르쳐 주었다. “넷째는 공양으로서, 관세음보살님께 꽃과 향, 과일, 곡식 등을 정성껏 올려야 한다. 없을 때에는 냉수 한 컵이라도 올려야 한다” 했다.
이 방법을 언제 어디서나 실천한다면, 꼭 도와 주실거라고 말씀하셨다. 오늘은 어렵게 왔으니, 정화수에 깨끗이 세수를 하고 관세음보살님께 천배를 올리라고 했다.
"어머니의 모정이 아니고는, 도저히 견딜 수 없는 불지옥 같았다"

송화자는 김영심이 “건강하게 잘 자라고 행복하게 살게 해주십시오”하고 마음으로 빌고 빌며 일천 배를 올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108배를 자주 올려 보았는지라, 천배는 3시간 정도이면 올릴 수 있으리 라고 가볍게 생각했다.
그러나 108배가 넘어 갈수록, 허리가 아프고 힘이 들어갔다. 400배에서 그만둘까,하고 망설였다. 영심을 위해 젖 먹던 힘까지 동원해 “관세음보살”을 부르짖었다. 몇 번이고 쓰러질 듯 쓰러질 듯 하며, 땀으로 목욕을 하며 700배까지 절을 올렸다.
700배가 넘어가자 비몽사몽이 되었다. 전에 조계사 법회에서 강의를 들었던 “등신불의 주인공 만적선사”가 나타났다. 만적은 많은 사람을 번뇌와 고통에서 구해주시길 부처님께 빌면서, 스스로의 몸을 불태웠다. 연민과 연기 속에서 고개와 등, 가슴이 앞으로 굽어졌다. 그리고 “부처의 얼굴과 너무도 다른, 뉘우쳐 한탄하고 번뇌하며 슬퍼해, 원망함이 서린 듯 한 얼굴이 되었다”는 등신불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딸아이 영심을 생각하는 일념이 되었다. 비몽사몽간에 100년의 세월만큼, 길고 힘든 고난의 시간이었다. 일 배 일 배를 땀으로 목욕하며, 한 걸음씩 버티어 나갔다.
어머니의 모정이 아니고는, 도저히 견딜 수 없는 불지옥 같았다. 바늘지옥 같은 수많은 지옥들이었다. 영심의 손을 잡고 빠져나가기 위해, 걸어가는 고통의 길이었다. 1000배가 끝나자, 옆에 계신 주지스님이 수건으로 땀을 닦아주며 치하해 주었다.
몇 시간동안 몸을 추스렸다. 대견해하는 주지스님의 배웅을 받으며, 향일암을 출발했다. 벌교역으로 가는 우마차를 얻어 탔다. 조성 행 기차를 타고 한참을 달려갔다. 조성 기차역에서 내렸다. 달도 뜨지 않은 캄캄한 밤길을 더듬어 집으로 향했다.
비록 몸은 피곤했지만, 관세음보살께서 딸아이를 지켜주실 것 같은 믿음이 생겼다.기쁨으로 충만해, 힘이 솟아나 발걸음이 가벼워 졌다. 하늘의 수많은 별들이 미소를 지으며, 치마폭으로 쏟아져 내렸다. 처음으로, 어머니로서 커다란 보람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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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는 조성역을 출발했다. 벌교 기차역을 향해, 시커먼 연기를 내뿜으며 요란스럽게 달려갔다. 40여분 정도가 지나갔다. 생선 냄새 풍기는 벌교 기차역에 도착했다.벌교역에서 한참을 쉬던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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